[한국의 자연환경 ③] 산 ㅡ 산이 많아서 불편했던 나라가 아니라, 산이 많아서 특별해진 나라

대한민국의 지도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산이 보입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산이 나타나고, 시골마을 뒤에도 산이 있으며, 심지어 서울 한복판에서도 북한산·관악산·도봉산·인왕산 같은 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토의 약 63%가 산림입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토 1,004만ha 가운데 산림은 약 630만ha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산이 이렇게 많은 것이 과연 인간의 삶에 불리하기만 했을까요?
농사를 짓기 어렵고, 길을 내기도 어렵고, 지역 간 이동도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산은 물을 만들었고, 숲은 식량과 땔감을 제공했으며, 산에서 얻은 약초와 나물은 우리의 음식과 생활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또 산맥은 지역을 나누면서 각 지역의 음식과 말, 생활문화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도시 바로 옆에 있는 산이 국민들의 가장 가까운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산은 장벽인 동시에 생명의 원천이었고, 지역을 나눈 경계인 동시에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낸 공간이었습니다.

1. 한국에는 왜 이렇게 산이 많을까?

우리나라의 산지를 이해하려면 한국의 지형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동쪽과 북동쪽을 중심으로 높은 산지가 발달하고, 서쪽과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지형이 나타납니다.
특히 한반도의 등뼈라고 할 수 있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산줄기입니다.

백두대간은 단순히 산을 연결한 지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물길과 생태계, 지역 구분, 교통과 생활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자연환경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에게 산은 단순히 높은 땅이 아니라 생활공간의 경계를 만드는 자연적인 장벽이었습니다.

강은 산에서 시작됩니다.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영산강은 모두 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에 내린 비가 계곡으로 모이고, 작은 물줄기가 하천이 되어 결국 큰 강으로 성장합니다.
따라서 산은 단순히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강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강은 다시 평야로 내려가 농업용수를 공급합니다.
결국 산 → 계곡 → 강 → 평야 → 농업 → 인간의 정착이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산이 많다는 것은 동시에 물이 시작되는 곳이 많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산은 음식의 창고이기도 했다

산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었습니다.
봄에는 취나물·두릅·고사리·곤드레 같은 산나물이 나왔고, 가을에는 각종 열매와 버섯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도토리로 묵을 만들기도 했고, 산에서 나는 약초는 식재료이면서 동시에 생활 속 약재였습니다.

특히 산나물은 지역에 따라 이용하는 종류와 조리법이 달랐습니다.
강원도의 곤드레밥, 경상도의 산나물 음식, 전라도의 다양한 나물과 장류 음식처럼 지역의 자연환경과 식문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산은 평야처럼 쌀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어려웠지만, 대신 사람들이 산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음식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려면 평야의 농업뿐 아니라 산의 식생과 채집문화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산은 약초와 임산물도 제공했습니다.
산에서는 먹을 것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약초와 목재, 숯, 땔감, 열매, 버섯, 나무껍질 등 다양한 임산물을 얻었습니다.

특히 전통사회에서는 나무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산에서 생산되는 목재와 임산물은 농촌경제의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산림청 통계에서 2024년 기준 임산물 생산액은 약 7조4천억 원으로 집계됩니다.
과거보다 산림의 경제적 이용 방식은 크게 달라졌지만, 산이 인간에게 자원을 제공한다는 기본적인 역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의 나무는 한국인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전통 한옥의 난방 방식인 온돌을 생각해보면 산의 중요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겨울이 추운 한국에서는 난방을 위해 상당한 양의 연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불을 피우는 데 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즉 전통사회에서 숲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에너지 자원이었습니다.

나무는 난방뿐 아니라 취사에도 필요했습니다.
오늘날처럼 가스나 전기가 없던 시대에는 산림자원이 곧 생활에너지였습니다.
그만큼 산과 인간의 생활은 가까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3. 그런데 산은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기도 했다

산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지역을 나누는 것입니다.

평야에서는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산맥이 가로막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산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하고, 겨울에는 눈 때문에 이동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산맥을 사이에 두고 지역 간 교류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마다 서로 다른 생활문화가 발달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음식도 그중 하나입니다.
같은 재료라도 지역의 기후와 산·바다·평야의 환경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가 가까운 지역에서는 생선과 해산물이 음식문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평야가 넓은 지역에서는 곡물과 농산물이 풍부했습니다.
산간지역에서는 나물과 버섯, 산채, 감자, 옥수수 등 지역 환경에 적응한 식재료의 활용이 발달했습니다.
전라도 음식이 발달한 배경에는 넓은 평야와 풍부한 농수산물이 있었고, 강원도의 산간지역에서는 감자·옥수수·메밀과 산나물 등이 중요한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경상도와 제주도 역시 서로 다른 지형과 기후 때문에 독특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결국 한국 음식의 다양성은 단순히 요리법의 차이가 아니라 산·평야·강·바다라는 서로 다른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사투리’라고 부르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는 말을 지역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산맥 하나가 특정 방언을 만들었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어의 형성에는 역사, 정치적 경계, 인구 이동, 교통, 경제권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산맥과 하천 같은 자연지형이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를 제한해 지역별 언어와 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지리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제주어, 경상 지역어, 전라 지역어, 충청 지역어, 강원 지역어 등 서로 다른 말의 특징이 남아 있습니다.

4. 산림은 한때 심각하게 황폐해졌다

우리나라의 산이 지금처럼 울창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림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벌목과 연료용 나무 채취, 전쟁 등의 영향으로 산림이 황폐해졌습니다.

1973년 시작된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은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후 대규모 조림사업과 산림보호정책이 추진되면서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산림복구 성공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산림의 모습은 자연적으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산을 보호하고 나무를 심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산림녹화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산림녹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산이 푸르게 보이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무가 자라면 토양을 붙잡아 산사태와 토양침식을 줄이고, 빗물을 머금어 물이 한꺼번에 하천으로 흘러가는 것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숲은 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고 탄소를 저장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휴식하고 걷는 공간이 됩니다.
즉 산림은 물 → 토양 → 생태계 → 기후 → 인간의 건강을 연결하는 거대한 자연 시스템입니다.

산림청 통계에서 현재 우리나라 산림은 국토의 약 63%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ha당 임목축적은 165.2㎥에 이릅니다.
과거의 ‘민둥산’에서 오늘날의 울창한 산림으로 변화한 것은 대한민국의 자연환경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5. 산은 이제 도시의 가장 가까운 휴식처가 되었다

과거에는 산이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산을 찾아갑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매우 독특합니다.
세계적으로 대도시 안에 거대한 국립공원이 자리 잡은 경우가 많지 않은데, 서울에는 북한산국립공원이 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북한산국립공원을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으로 설명합니다.
공원 면적은 약 76.9㎢이며, 서울과 경기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접근성입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로 입구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도시에서 산으로 가는 데 자동차로 몇 시간을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산우이역 주변에서는 북한산 탐방로로 접근할 수 있고, 그 외의 지역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의 탐방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울의 매우 특별한 자연환경입니다.
세계적인 대도시의 중심에서 지하철을 타고 산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산은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산입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연간 약 500만~700만 명 수준의 탐방객이 찾는다는 자료가 이 기록의 배경으로 제시되어 왔습니다.

이 기록은 북한산의 절대적인 방문객 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공원의 면적에 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느냐입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77㎢에 불과하지만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배후도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망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즉 북한산은 도시 + 대중교통 + 산 + 국립공원이라는 네 가지 조건이 결합된 매우 독특한 공간입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북한산은 화강암 지반의 침식과 풍화로 만들어진 독특한 암봉과 계곡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산성 등 역사문화자원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북한산은 단순한 등산 장소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자연과 만나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산은 이제 관광자원이 되었다

옛날의 산은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오늘날 산은 찾아가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설악산의 단풍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지리산을 걷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한라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제주를 찾습니다.
국립공원은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동시에 국민에게 휴양과 탐방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등산뿐 아니라 둘레길, 숲길, 생태관광, 캠핑, 산림치유 등 산을 이용하는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산의 가치가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산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을 얻었다면, 오늘날에는 산에서 건강과 휴식, 관광과 생태적 가치를 얻는 것입니다.
산의 기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가 산을 이용하는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마무리 — 산은 장벽이면서 생명의 시작이었다

산은 대한민국의 다양성을 만들었습니다.

산은 물을 만들었습니다.
산에서 시작된 물은 강이 되어 농업과 도시를 발전시켰습니다.
산에서는 나물과 약초, 목재와 다양한 임산물을 얻었습니다.
나무는 온돌과 취사의 연료가 되었습니다.

산맥은 사람들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어 지역 간 교류의 속도와 범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음식과 언어, 생활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교통 발달로 산을 넘는 것이 쉬워진 오늘날에는 산 자체가 관광과 휴양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즉 산은 시대에 따라 우리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제공했습니다.
생존의 공간 → 자원의 공간 → 생활의 경계 → 관광과 휴양의 공간으로 변화해 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 산 때문에 예전 사람들은 먼 길을 돌아가야 했고,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습니다.
산맥은 지역과 지역을 갈라놓았고,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를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산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다양한 지역문화가 남았습니다.

강원도의 산나물 음식, 전라도의 풍부한 농수산물 음식, 경상도의 독특한 음식문화, 제주도의 섬 음식처럼 자연환경에 적응한 지역의 식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사투리(지역어) 역시 오랜 역사 속에서 각 지역의 자연적·사회적 조건과 함께 분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산이 만든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물입니다.

산에 비가 내리고, 물이 계곡을 만들고, 계곡이 강이 되어 평야와 도시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1편에서 살펴본 한강과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역시 결국 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산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약초, 나무와 땔감을 제공했습니다.
한때는 지나치게 이용되어 황폐해졌지만, 우리는 다시 나무를 심고 숲을 되살렸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북한산 등산로까지 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의 이동을 막았던 산이 이제는 도시인의 건강과 휴식을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산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산은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먹이고 살리고 연결해 왔다.”

산은 단순히 높은 땅이 아닙니다.
물의 시작점이고, 음식의 창고이며, 숲의 터전이고, 지역문화의 경계이며, 오늘날에는 국민의 휴식처입니다.
그리고 산에서 시작된 물은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갑니다.

한국의 자연환경 4편에서는 “왜 한국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뚜렷한 계절이 존재하는가?”를 출발점으로, 사계절이 어떻게 한국인의 생활 전체를 바꿔놓은 자연환경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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